교회 소개
푸른 초장
제자 훈련원
기관 게시판
은혜의 공간
소식과 나눔
토요쉐마학당
image1 image2
푸른 초장
 
목사님 칼럼
 
설교 말씀
 
설교 영상
 
설교 방송
 
매일 양식
 
신앙 상담
 
행사 동영상
 
QT
설교 말씀
김승규 / kmcksg
kmcksg@hanmail.net
998
2024-01-20 20:14:52
56
  2024년1월21일-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마가복음5:35~43 요절:마가복음5:36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은 7년동안 미디안의 속국이 되어 처참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때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당
당히 나서서 독립전쟁을 하였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3만명이나 몰려 들었습니다. 기드온이 독립군을 모
았다는 소식에 미디안은 군대를 일으켜 13만5천명 정규군을 이끌고 진을 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3만명이 많다
하십니다. 그리고 두려워 떠는 자는 다 집으로 돌려 보내라 하십니다. 그러자 2만명이 돌아가고 1만명이 남습니다. 그런데도 하
나님은 그것도 많으니 개울가에서 손으로 물을 떠서 먹은 사람만 남기고, 갈증을 견디지 못해 경계를 풀고 고개를 물에 박고 물
을 먹은 사람은 다 돌려보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9천7백명이 돌아가고 3백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군인의 신분을 잊
어 버리고 육신에 굴복하고 두려워 떠는 자는 다 돌려보낸 것입니다. 비록 300명이 남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쓰셔서 10만이
넘는 대군을 무찌르시고 대승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이들과 함께 하시고 이들을 통하여 일
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딸의 사망소식을 듣고 두려워 떠는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라 믿음을
심으시고 그 죽은 딸을 살리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옵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 심령 속에 역사하는 두려움을 몰아내
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께 나온 회당장 야이로
2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배를 타시고 다시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바닷가에는 무
리들이 떼를 지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가버나움 지역의 사회적 지
위와 명망이 높은 회당장 야이로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간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
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니, 저분은 우리 마을의 최고 지도자 회당장님이 아니신가? 저 어르신이 젊디젊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간구를 하네? 어디 가서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 들어 봅시다.”
회당장은 유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유대사회는 회당을 중심으로 삶이 이루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10가구
이상만 모이면 회당을 지었으며,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회당에 모여 예배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며 자
녀를 교육하는 학교이기도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범죄한 자를 재판도 하고 형벌도 내렸습니다.(마10:17) 회당은 유대인의 정신
적인 본관이요, 사회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회당에는 회당장이 있습니다. 회당장은 예배를 인도하며, 기도할 사
람, 율법을 읽을 사람, 설교를 할 사람을 택했습니다.(눅4:16,마4:23,행13:15) 그러므로 유대사회에서 회당장은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당시 회당장은 권위적이고 율법적이었으며 안식일 문제로 인해 예수님에게는 적대 세력으로 부딪
히고 있었습니다.(눅13:14) 그런데 이 회당장 중에 하나인 야이로가 오늘 예수님을 환영하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간구했습
니다. 왜 그가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첫째, 그는 한 인간으로서의 절망을 맞보았습니다.
야이로에게 있어서 외딸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외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야이로는 사회적 신분도 높고, 학식도
많고, 또 돈도 많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으니 인격도 고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가는 딸 앞에서는 그의 모든 것
이 허사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야이로는 이때 예수님을 기억한 것입니다.
지식저편에 자리 잡고 있던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했습니다. 비록 배척했
지만 그분이 행하신 일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해 보고 들은 것으로
인해 지식적으로 예수님을 알뿐이었습니다. 그 예수님과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사회적인 신분과
가진것을 뒤로하고 연약한 한 인간임을 깨달았을 때 그는 지식으로만 남아 있던 예수님이 더이상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새로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르침, 그의 행동, 그의 모든 인격, 그의 모든 사역 등 하나하
나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에게 조금씩 편견이 걷히고, 의심이 걷히고, 믿음과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
다. 그는 예수님이야 말로 죽은 자를 살리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지식이 이제 실제 사건 앞에
서 마음으로 와 닿은 것입니다.
둘째, 믿음은 그를 예수님께 겸손히 엎드리게 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대한 지식이 마음으로 와 믿어졌다면 그의 믿음이 참 믿음이냐 아니냐는 행동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나
님이 그것에 대해 반응하시고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을 선물로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갈등이 되었을 것입니다. 정말
내 딸도 나을 수 있을까? 그러나 정작 그가 예수님께 나아가야 되는데 더 갈등되는 요소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배
척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안식의 법을 어기는 이단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그런 자신을 받아 주실까
의심도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체면과 권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는 평생 쌓아온 것입니다. 그는 망설일수 밖에 없
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딸 앞에서 더이상 귄위와 체면을 중시 여기는 회당장이 아니라 한 아버지였
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회당장으로서의 권위, 자존심과 체면을 다 버리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간구하게 만들었습니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은 죽어가는 인생들을 보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차
마 죽어가는 인생들을 볼 수 없어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 이땅에 겸손히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엎드려 제자들의 발을 닦기
까지 체면을 버리시고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발 앞에 엎드리어 간구하는 회장장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랑에
감동받으십니다. 그리고 움직이십니다.
우리에게 이 사랑과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을 돌리게 할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넘치길 축원합니다. “오셔
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우리의 문제의 현장으로 예수님을 초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누구를 초청합니까? 인간적으로 친하고 가까운 사람, 돈 많고 지식많은 사람을 초청하겠습니까? 믿음있는
종, 기도의 종, 말씀의 종을 초청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UN을 설립할 때 트루먼 태통령은 UN에 모
셔야 할 분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나의 심령과 우리가정, 나의 삶의 모든 현장에 예수님을 초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살줄로 믿습니다.
2. 믿음을 축복하신 예수님
회당장의 집으로 갈 때 혈루증 여인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지체되었습니다. 그때 바로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비보를
전합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리였습니다. 그래
도 딸의 숨이 붙어 있을 동안에는 예수님께 대한 희망의 불씨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은 그 작은 희망
의 불씨마저도 꺼 버리는 참으로 절망적인 소식이었습니다. “딸이 죽었습니다, 선생을 더 이상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사람들
의 이 한마디는 야이로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습니다. “딸이 죽었으니 빨리 가서 장례식이나 준비합시다.” 상식적으로 생
각하면 얼마나 당연하고 합리적인 말입니까? 그러나 예수님 편에서 볼 때 이들의 말은 예수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참으로 모독
적인 발언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말들은 야이로를 절망과 두려움의 절벽으로 밀어뜨리는 참으로 잔인하고도 무자비한 말
이었습니다. 이들의 불신적인 말로 인해 야이로는 이제 끝없는 절망과 슬픔과 두려움의 심연으로 굴러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
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야이로를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하시고.”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려
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불신과 두려움을 심는 이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의 마음속에 파고드는 두려움
의 세력과 싸우라는 뜻입니다. “두려워 말라” 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가능성이 있다.”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야이로의 가슴속에는 두려움과 믿음이라는 두 마음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야이로의 마음은 순식간에 두려움 쪽으로 급속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게임은 이미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하심으로서
야이로의 연약해진 믿음을 강하게 붙들어 주셨습니다.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그의 믿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끊어진
소망의 밧줄을 다시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마음에 두려움을 갖는가 아니면 믿음을 갖는가 하는 것에 따라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
다. 민수기 13장에 보면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지파 중에 10지파의 대표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은 대장부로 보였고, 자신들은 메뚜기처럼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로 보
였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자신을 한없이 작고 무력하게 보이도록 합니다. 반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
었기 때문에 그 큰 가나안족속들이 잘 차려진 먹음직스러운 밥으로 보였습니다. 믿음은 이처럼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고ㅍ의욕과 열정을 갖게 합니다. 결국 두려움 때문에 불신적인 소리를 한 10지파 족장들은 다 광야에 엎드러져 죽고 믿음의
말을 한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자들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계
시록 21:8절에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은 지옥행 열차 제 1 호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1:7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게 주신 것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사단이 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이 두려움의 세력과 싸워야 하겠습니다.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말
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일어나라.” 그러자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어 다니며 웃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등, 야이로앞에서 재
롱을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사람을 드러눕게 합니다. 죄로 인해 드러눕게하
고, 절망으로 드러눕게 하고, 무기력으로 드러눕게 합니다. 염려와 근심, 두려움과 허무등 온갖 사망권세로 드러눕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리다굼! 일어나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역사는 일으키는 역사입니다. 중풍병자에게도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막2:11) 우리도 달리다굼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믿음으로 일어나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캄캄한 인생길

2024년1월14일-네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2024년1월28일-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더라

Copyright ⓒ ~2007 by 광명교회,  주소: 우)429-450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1744-6
Tel : 031-431-8364
[개인정보보호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