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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김승규 / kmcksg
kmcksg@hanmail.net
996
2024-01-13 12: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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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1월7-네 이름이 무엇이냐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말씀:마가복음5:1~20 요절:마가복음5:9
한 해를 시작하는 첫 주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소망들이 이루어져 가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귀신들려 울부짓는 거라사인을 고쳐주신 예수님이 나옵니다. 말씀을 통하여 이시대 귀신들려 방황하는 모든 이들이 고침받고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은혜가 임하길 축원합니다.
1.더러운 귀신 들린 거라사인(1-5)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 거라사 지방에 이르셨습니다. 거라사 지방은 10대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이곳은 본
래 유대 땅이었으나 알렉산더대왕의 정복 이후 헬라 이주민이 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로마에게 정복당해 로마 제14군단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배에서 나오자 마자 그들을 맞이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무덤은 어떤 곳입니까? 무덤은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무덤은 삶의 허무를 느끼게 합니다. 또한 무덤은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매우 음산합니다. 사람들은 낮에도
이곳에 오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혼자 무덤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가 무덤에서 사는 것을 볼 때 그의 내면이 무
덤과 같이 어둡고 부정적이고 썩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힌 자의 삶은 곳 무덤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습니까? 3절, 4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날뛰는 그를 여러 번 쇠사슬과 고랑으로
매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어찌나 악을 쓰고 힘이 센지 쇠사슬을 끊고 쇠
고랑까지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문제를 물리적으로 해결하려 할 때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어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반발심만 커지고 그를 더욱 가정과 사회에 멀어지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왜 이렇게 미쳐버린 것입니까? 가정의 기대에 대한 짓눌림이 부담이 되어 미치게 되었을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너무 슬퍼하다가 끝내 미치게 되었습니까? 흑은 성격이나 외모에 대한 심한 열등감이 폭발하여 그를 미치게 했습
니까? 투자하다가 망하여 절망에 빠져 미쳐버렸을까요? 우리는 그가 미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가정과 사회를 떠
나 무덤 사이에서 거처하는 것을 볼 때 가정과 사회가 그를 미치게 했던것 같습니다.
오늘날 갑작스런 사회의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 빈부격차로 인한 인간소외를 겪게 됩니다. 정치적 대립과 계층간의 갈등
으로 인하여 광적으로 사회를 비판하고 남을 공격합니다.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에 대하여 광적인 반응을 하며 무차별적인
비난을 퍼붓습니다.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등이 사람들을 미치게 합니다. 대인 관계에 대한 상처로 인하여 잦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주 죽고 싶다는 자살증에 시달립니다. 재산 문제로 가족들과 갈등하고, 세대간 소통의 부재로 인한 답답
증에 시달리다가 가정을 뛰쳐나가고 소식을 끊고 나 홀로족이 되어 무덤가를 배회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은 이런 외부적인 환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내면에 역사하는 죄의 소욕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 끊임없이 죄의식에 시달려 왔습니다. 죄는 그 중심으로부터 썩게 만듭니다. 선을 행하고
자 하나 선을 행할 힘을 상실케 만듭니다. 끝없는 탐욕, 육신의 정욕, 비교의식, 안일과 게으름, 자기 중심적인 이기심과 중오심
이 지나치면 자신도 스스로를 감당치 못하고 미치게 됩니다. 죄는 인간을 내면 중심으로부터 썩게 만듭니다. 이렇게 썩고 냄새
나는 어두운 곳에 귀신은 집을 짓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라사인이 가정과 사회를 뛰쳐나와 아무도 그를 얽어매지 않았을 때 그는 자유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그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마치 수렁처럼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마치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는 것 뿐이었습니다. 너무 괴롭고
힘들어 자기 몸을 돌로 짓 찧으며 자학 할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싸이면 소리지르고 계속 무언가를 먹어 치우므
로 자학합니다. 어떤 이는 닥치는 대로 쇼핑을 합니다. 어떤 이는 남을 칼로 찌르고 본인도 자살을 합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거
라사인처럼 아무 문제의 해결없이 발버둥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회도 가정도 자기 자신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습니다. 왜 그
럴까요? 거라사인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의 문제가 귀신들렸다고 말합니다. 이는 영적인 문제입니
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끊임없이 자유를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의 문제는 영적으로 귀신들린 것이 문제였던 것입
니다. 그럼 누가 이런 거라사인을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거라사인을 구원하신 예수님(6~20)
예수님께서는 한 영혼이 무덤 사이에서 곤두박질 치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귀신들려 울부짓는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때 귀신들린 자도 멀리서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
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귀신도 영물이기에 예수님
을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그가 갑자기 왜 이렇게 괴로워 하는 것입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저를 만나자 마자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을
그 사람과 분리시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비록 흉악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그도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고귀한 존
재로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에이 미친놈”하고 소망을 끊고 상관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면 거라사인도 “그래 나 미쳤다. 미
친놈한테 한번 맞을래” 하며 대들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거라사인은 귀신들린 자신의 모습을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자신이 전혀 귀신들린 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전혀 모릅니다. 이것은 귀신이 그의 생각을 통해 그를
완전히 속였기 때문입니다. 교만귀신, 탐욕귀신, 마약과 음란귀신, 열등감귀신, 오기와 혈기귀신, 허무귀신등 오늘날 이런 악한
영에 사로 잡힌 사람은 자신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신에게 속아서 귀신이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도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라 그렇게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요8:44)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나?” 예수님께서 왜 그의 이름
을 물으셨을까요? 이름이란 그 사람의 전 인격과 존재를 나타냅니다. 그도 본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거룩
한 존재였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은 사랑과 기대를 담아 좋은 이름도 지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생각과
고집대로 살다가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혀 그의 영혼을 귀신에게 내 주고 말았습니다. 귀신은 사단을 따르는 악한 영들입니다.
이 악한 영들은 사람 속에 들어가 영혼을 점령하고 조종하는 것입니다. 달콤한 말로 유혹하여 죄짓게 하고 죄를 지으면 그것을
무기로 종을 삼아 버립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고귀한 것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끝내는 그 모든 삶을 멸망시킵니다.
(요10:10상) 달콤한 말로 속삭이는 사단에게 속으면 안됩니다. 지금도 사탄에게 속아서 그 생각을 내주는 이들이 많습니다.(요
13:2) 더러운 귀신은 그 생각을 틈타고 사람에게 들어가 영혼을 점령하고 그를 더럽고 추한 멸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가 아는게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제일 먼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질문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짓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에게 “아담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네
가 어디있느냐” 그 존재 의미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아담아! 너는 내 형상대로 지음받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아니냐? 내가 너에게 준 이 광활하고 넓은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사명을 붙들고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는 존재가 아니더냐? 그런데 사
단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준 계명의 말씀을 불순종한 결과가 무엇이냐? 사단의 말대로 네가 하나님이 되었느냐? 참 자유하냐?
아담아 너는 어디 있느냐?”
이렇게 하나님은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잃어버린 존재를 되찾아 주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명예와 사랑과 물질
을 추구하다가 참된 자아를 상실하고 한계 상황에 부딪혀 절망하고 있는 사기꾼 야곱에게도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멀고 험한 이세상길
이 예수님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존재
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군가? 찾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룩한 존재, 귀한 존재,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보배같은 존재임을 깨우쳐 주십니다.(사43:4) 이것이 성도의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을 잃어버리면 거라사 광인처럼 소리 지르고 자학하고 사는 것입니다. 거짓된 이름으로 비참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물으시자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군대는 레기온입니다.
이는 로마 군인 6000명의 군단입니다. 이를 볼 때 그에게는 레기온에 해당되는 떼귀신이 역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앞에 섰을 때 귀신들린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이렇게 주님께 도우심을 요청했을 것입니다. “주여 저는 하나님을 떠나 마음대로 살고자 했을 때 거기엔 참된 자유가 없
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나를 귀신이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수많은 귀신에게 조종당하는 군대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
시어. 이 더러운 모습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비로소 영적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정체가 드러난 귀신은 더 이상 그
사람 속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의 허락을 받아 이천여 마리의 돼지 떼에게 들어갔습니다. 귀신 들린 돼지들은
갑자기 미쳐서 바다로 뛰어 들어 자살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귀신 들렸던 사람은 정신이 온전해져서 단정히 옷을 입고 주님과 함
께 동행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정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는 군대 귀신
들린 쓸모없는 인생에서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데가볼리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19.20절)
사라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따라 우리 삶은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영혼이
잘 되야 범사가 잘 됩니다.(요3서1:2)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이땅에 오셨습니다.(요한1서3:8) 예수님을 믿어야 마귀를
물리치고 이렇게 영혼이 잘 되야 모든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는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주셨습니다.(막
16:17) 날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와 말씀으로 영혼을 깨끗이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시기 바랍
니다. 그래서 새해엔 범사가 잘되고 행복한 복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12월31-잠잠하라 고요하라
2024년1월14일-네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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