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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규 / kmcksg
kmcksg@hanmail.net
1003
2024-03-07 19:59:22
48
  2024년2월25일-안심하니 내니 두려워말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마가복음6:45~52
요절:마가복음6:50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365번 기록돼 있습니다. 우연일까요. 1년 365일 하루하루 두려워하지 말고 살라는 하나
님의 의도가 담겨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을 살면서 늘 두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두려움과 싸워 승리할 수 있을
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내면에 역사하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믿음을 덪입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길 축원합니다.
1. 기도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지난주 빈 들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이 사건 이후 예수님은 제
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남아 무리를 보낸 다음 따로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왜 예
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해서 바다 건너편으로 보냈으며, 그리고 기도하러 산에 가셨을까요? 뭔가 다급히 서두르는 것을 볼 수 있
습니다. 제4 복음서인 요한복음에 그 이유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
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느라” (요6:15)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대통령이 누구입니
까? 바로 경제 대통령입니다. 예나 오늘날이나 백성이 원하는 것은 경제 대국을 이룩하여 백성을 잘 먹이는 지도자입니다. 그
런데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돌아버리지 않겠습니까? “야 이분이다. 이분이 왕이 되면
먹고사는 것은 끝난다.” 거기에 앉아서 이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음이 되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는 움직임
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 같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괜찮지만, 당시 로마의 식민지 통치와 분봉왕 헤롯의 독재정권하
에서는 잘못하면 이것은 국가 반란죄에 해당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인생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
신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고난의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백성들의 오해로 인하여 잘못
하면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사명의 길이 방해 받을 수 있는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세상 권세와 명예에 대한 유
혹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 밤 홀로 산으로 가셔서 밤새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이 흘러가고 있을 때 또, 사람들이 오해하고, 명예와 권세의 유혹이 몰려올 때 예수님은 기도를 택하셨습니다. 조용히 홀로
산으로 가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속에서 세상 유혹을
뿌리치고, 사명을 다 잡으시고, 화난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우리도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역사하시고 붙잡아 주십니다. ♬기도할수 있는데
2.바다 위를 걸어 오신 예수님
그런데 배를 타고 가던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갈릴리 바다에 큰 바람이 불어 와서 제자들이 고난을 당하게 되
었습니다. 예수님도 계시지 않는 깊은 밤 바다 한가운데서 큰 풍랑을 만나 싸우는 제자들은 바람 앞에 등불과 같았습니다. 마가
복음 4장에서도 제자들은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난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한 배에 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예수님
이 배에 없습니다. 얼마나 제자들이 당황하고 두려웠겠습니까? 때가 밤4경 즉 우리 시간으로 새벽 3시쯤입니다. 칠흑 같은 어
두운 밤에 거샌 바람과 맞서서 힘겹게 노를 젖는 제자들은 너무나 지치고 탈진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48) 예수님은 제자들을 고난 중에 끝까지 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
내 물위를 걸어서 고난 중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것은 역경 중에 있는 제자들에게 임한 은총의 방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앞에 오는 시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왜 이런 아픔을 당해야 하는가? 재수없다, 왜 하필이면 나
냐?” 제자들도 “왜 하필 예수님이 배에 타지 않았을 때 이런 일을 당하느냐? 운이 되게 없네” 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것이 고난을 대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
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 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우리 앞에 오는 시험과 역경은 사실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밖에 주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늘 주님은 우리를 지켜보시고 다가와 붙잡아 주십니다.
때로 우리 인생의 항해 길에 심한 역풍이 불어올 때 예수님은 멀리 계시는 것 같고 우리를 돌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
수님은 변함없이 살아계셔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밤중에 바다를 걸어서라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안심
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풍랑 속에 난파당하여 있는 우리를 도우실수 있는 분은 이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
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이 예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우리를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말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시련과 역경 속에 있는 모든 인생들이 들어야 하는 음성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은 작고 큰 어려움에 직면하여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이사야 41:10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
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왜 나만 겪는 고난
이냐고
3.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움'은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감정의 하나입니다. 두려움은 예지능력(豫知
能力)에서 오는 것입니다. 적어도 사람은 그의 앞에 될 일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앞에 놓인 일을 미리 생각
하여 기뻐할 줄도 알고 두려워 할 줄도 압니다. 이같은 사람의 예지능력을 하나님이 주실 때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에게서는 이것이 두려운 마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본적인 두려움은 대부분 불행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시험에 떨어지면 어떠하지. 일이 잘못되
면 어떠하지” 그런데 사람들은 불행 자체는 두려워하면서 불행의 원인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죄를 지으면 불행하게 됩니다.
죄의 결과인 불행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죄 자체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즉 도둑질 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않고 도둑질 하다 들
키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합니다. 알고 보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것을 보
면 됩니다. 죄를 지을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냐? 죄를 지어놓고 그 결과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냐? 이것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
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죄 자체를 두려워할 줄 모르고 죄로 빚어진 결과를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크리
스천입니다. 신앙인은 결과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신앙인이 중시하는 것은 죄 자체입니다. 죄 자
체를 두려워하고 삼갑니다. 불행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의 원인 그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격
(格)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라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
리는 경건이라고 합니다. 신앙심이 깊은 나머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
는 데서 '경건'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두려움 가운데 생
각해 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바로 쓰고 있는가? 건강을 바로 쓰고 있는가? 우리는 결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하라고 재능을 주셨습니다. 일하라고 젊음을 주셨습니다. 죄가 되는 줄 모르기에 자칫 범하기 쉬
운 무서운 죄가 있는데,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바 젊음과 재능과 건강, 물질, 시간등을 땅에다
파묻어 둔 채 낭비하는 것은 죄입니다. 이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됩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사명자의 마음속
에 늘 두려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이와 같은 경건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건강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
기를 축원합니다.
4.마음이 둔하여지지 맙시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사납게 몰아 치던 바람은 잔잔하여 졌습니다. 이를 보고 제자들이 놀라게 되자 성경은 왜 제자들이 놀
랐는지 이렇게 코멘트합니다.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막6:52) 마
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제자들이 이렇게 무서워하고 두려워했던 것은 예수님이 앞서 행하셨던 일들을 기억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자 시절 초기에도 예수님이 풍랑을 잔잔케 하시자 놀라며 말
했습니다. “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또 많은 시간이 지나고 수없이 예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난
지금, 이번에도 예수님이 바람을 잔잔케 하시자 또 놀랩니다.(막6:51) 매번 놀라기만 하면 뭐합니까? 그 놀란 사건을 통해 깨달
아야지요. “아!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구나, 창조주시요 전능한 분이시구나 이 예수님을 믿고 살면 나도 풍랑을 이기는 능력있는
삶을 살겠구나! 예수님을 붙들고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깨달아야 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서도 ‘와 놀랍다’, 죽은 자를 살리면 ‘와 놀래라’ 맨날 놀래기만 합니다. 놀라는 것으로
끝나면 안되고 역사성이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BC와 AD로 인류역사가 나뉘었습니다. 예수님
은 한마디로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허구위에 놓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 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
리는 역사 속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구원자이고 누가 진정한 메시아 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지난
세월 속에서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셔셔 어떻게 섭리하셨으며 어떻게 나를 사랑하시고 어떻게 나를 인도하셨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래야 또 다른 사건과 역경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곁에서 항상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 하나님 앞에서
살으시고 이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024년2월18일-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2024년3월2일-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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