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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김승규 / kmcksg
kmcksg@hanmail.net
999
2024-03-07 19: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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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1월28일-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더라
믿지 않음을 이상이 여기더라
말씀: 마가복음6:1~6
요절: 마가복음6:4

우리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 생활, 또 여러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관계가 잘못되어
일이 어그러지고 파산하고 시련과 상처와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이 관계를 잘 못하는 것중에 하나가 편견과 고정관념입니다.
빌립이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소개하고 전도합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
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 이것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외집단 동질성 편향> 이라고 합니다. 즉 어떤 집단에서 우세하게 나
타난다고 여겨지는 특성을 모든 개인들에게 개인 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적용하는 인지적 관점을 말합니다. 저는 충청도 사
람입니다. 충정도 사람이라고 하면 선입견이 ‘느리다’ 입니다. 말도, 행동도, 성격도 다 느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충청도 사
람이 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편견이 대인관계를 어렵게 합니다. 또 ‘가난한 사람은 정직하고, 부유한 사람은 교활하다’ ‘종교
는 연약한 자들이나 가지는 것이다’ 이런 편견과 고점관점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쟤는 여자라서 수확 같은 것은 잘 못해’ ‘나는 흑인이라서 운동은 잘하는데 머리는 나쁠거야’ 이러한 생각은 개인의 객관적인
성취나 능력을 저해시키고 이는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는 것에도 엄청난 결과를 초래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에도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들이 많습니다 ‘여류 작가’ ‘여성 대 법관’ ‘여자 총리’ ‘여자 경창’ 남자가 총리가 되고 대 법관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여자가 대법관이나 총리가 되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도 그러한 편견의 틀에
갖히게 되면 사람들을 오해하게 되고, 또 자신도 그러한 틀 속에서 능력을 제한하고 노력해 보려고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이 고향에 내려가셔서 배척당하는 사건입니다. 여기에도 편견과 고정관념이 문제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불신의 시대에 제자들을 믿음의 사람들로 키우셨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인간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신본
적인 믿음의 사람들로 거듭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1. 고향을 방문하신 예수님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쫓으니라.”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복음역사를
감당해 오시다가 오랫만에 고향 나사렛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을 떠나실 때에는 혼자 떠났지만 이제는 열 두
제자를 데리고 금의환향하셨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그립고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예수님은 고향에 가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2상) 이를 볼 때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신 목적은 부모 친척들과 친지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고향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믿음을 심고자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
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메시야로서의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찜이냐”(2절하)
예수님의 말씀의 지혜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성현의 가르침은 아무리 위대하다 할 지라도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죄사함의 은혜를 줍니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분명한 영적 가치관을 세워주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의 지
혜는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요
7:16) 예수님의 말씀의 지혜와 그 손으로 행하신 권능의 역사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증거해
줍니다.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
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요5:36)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을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
다.
2. 고향에서 배척 받으신 예수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 가르치심을 들고 그 지혜에 놀랐습니다. 그들은 이를 통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
야이심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고향에서 메시야가 난 것을 크게 기빼하고 마을 축제를 열어 대대적인 환영을 해야 했
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웅이 어떻했습니까?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손으로 이루어
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6:2,3)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그 권능을 체
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을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
을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예수님의 입은 웃은 초라하고 아무 가진 것도 없고 학벌도 변변찮고 대학 졸업장이나 세상
권세도 없는 초라한 노동자의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제자들도 꾀죄죄하여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선입관과 편견에 사
로잡혀 예수님을 외모로 판단했습니다. 또한 어린시절 예수님과 같이 놀았다는 교만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일 수 없
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그들을 교만하게 하고, 교만은 그들의 영적인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
을 보고 듣고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큰 특권을 받았지만 교만과 불신 때문에 모든 축복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어느 민족보다도 많은 은헤와 특권을 받았지만 인간적인 생각으로 인한 교만과 불신 때문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큰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볼때 편선입견, 편견, 고정관념 같은 인간적인 생각이 복음의 큰 원수임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건을 볼 때 인간적인 눈으로 볼 수도 있고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인간
편에서 볼 수 있고 하나님 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편에서 보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때 마음이 고만해져서 하나님이 세우신 종도 우습게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가롯 유다는 마리아가 모든 진심을 드려 목함을 깨트려 향유를 부었을 때 인간적인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허비한다고 생각하
고 분을 내였습니다.(012.3.4)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의 모든 진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
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고 하시며 놀랍게 축복 하였습니다.(막 I4:9) 결국 가룟 유다는 인간
적인 생각을 하다가 구원의 은혜 마저 배반하고 생명의 구주를 파는 엄청난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고향에서 배척 받으신 예수님을 공부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이 무엇을 배웠을 까요? 예수님께서
왜 이런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무시 받고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동
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환영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언제든지 무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여인들
은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 일행을 섬졌습니다 (녹8:2,3). 제자들은 신이 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고향에 가시면 더 환영받
을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배척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배척받는 모습
올 보여 주신 것은 장차 인간의 죄로 인해 배척 받으시고 고난받으실 고난의 주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인생들로부터 철저히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
니다. “그는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되었으며 잔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이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
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다다”(사53:3). 십자가는 멸시와 배책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통하여 영광의 주가 되졌습니다. 제자 생활이란 예수님께서 가신고난의 발자
취를 따르는 생활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이 진정으로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기보다 무
시받고 배척받는 훈련도 받아야 합니다.
3.모든 촌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의 편견과 교만과 불신으로 인해 심히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감상적인 생각을 하지 않
으시고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집 외에서는 존경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의
배척을 성서적으로 응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아무 권능도 행하지 못하시고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
여 고치실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예수님의 능력이 제한 받
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제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통해 그 능력을 행하십니
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원한다면 인간적인 생각에 기초한 불신과 교만을 회개하고 영적인
생각을 하며 믿음과 겸손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로 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배척을 받으면 낙심하여
일할 의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또 복음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에 시달리게 되어 소극적이 됩니다.
그러나 6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더 적극적으
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결코 낙심치 않는 메시야이심니다.(사42:4) 세상에는 복음을 배척하
는 사람도 있지만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런 영적 소원도 없고 세상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내
면이 순수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진리를 사랑하는 소수의 영적 사람들을 통해서 계승, 발전,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좀더 사고를 폭넒게 확장해서 예수님에 대해 깊이
생각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사고는 닫쳐있는가 아니면 열려있는가요? 오픈마인드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어렵고 지루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성경 읽독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참 지겹고 따분하
다’ 이런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은 감격스런 예배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고를 확장해야 합니다. ‘저 사람은 전
도해도 안될거야’ ‘나는 원래 그래’ 타인에 대한 것이나 자신에 대한 거이나 고정관념을 벗어 나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나의 불신으로 예수님의 능력 제한하는 것입니다. 부디 믿음의 사람이 되어 예수님의 동역자가 되어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복된 성도들이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년1월21일-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2024년2월4일-열두 제자를 전도보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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