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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김승규 / kmcksg
kmcksg@hanmail.net
984
2023-09-09 20:03:01
1244
  2023년9월10일-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신 예수님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2:1~12 요절:마가복음2:5
성경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성경은 모든 인류가 다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사람이 병들면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사람
들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보고 사람들의 문제를 피상적으로 진단합니다. 그래서 처방도 치료도 피상적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진단하시고 근본적으로 치료하시는 메시야이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중풍 병자는 어떤
점에서 죄인이며 예수님은 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주셨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문제를 깨다고 해결받는 복
된 시간이 될수 있길 축원합니다.
1.사람을 못쓰게 만드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집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그중에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왔습
니다. 너무 많은 인파로 인하여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지붕을 뚫고 그 중풍 환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이때 예
수님께서 그 중심에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아
주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이 사람이 예수님께 온 목적은 중풍병이 치료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육신의 병
을 치료하기 전에 먼저 죄 사함을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죄를 더 시급한 문제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
릅니다.
중풍병은 어떤 병입니까? 신경이 마비되어 걷지도 못하고, 말도 어눌하고, 혹은 하반신이 마비되어 대소변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고약한 병입니다. 심하면 전신이 마비되어 침상에 누워 지내야 됩니다. 오늘 본문의 중풍 병자는 누운 상을 그대로
메고 나온 것을 볼 때 그 정도가 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이 들었으니 일할 수 없고, 일할 수 없으니 직장을 퇴직하게 되고,
직장을 그만두니 가난해집니다. 환자가 집안에 오래 누워있으니 온 가족이 힘들고 병수발 드는 이들도 지칩니다. 생활이 뒤 엉
퀴고, 가정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병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절망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치게 하고, 이로 인해 온 가정
에 불행이 닥쳤습니다. 이것이 질병이 가져다 준 표면적인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네 풍기가 떨어졌느니라’ 먼저 말씀하지 않으시고 ‘죄사함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
람을 못쓰게 만드는 것은 중풍 병처럼 보입니다 중풍 병만 나으면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한 인생을 살 것처럼 생각
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조건 개선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보실 때 먼저 ‘죄사함’을 선포했습
니다. 예수님은 중풍 병자를 보실 때 죄 사함을 받아야할 죄인으로 보셨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질병도 문제이지만 이 사람의 근
본 문제는 죄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떤 점에서 죄인입니까?
첫째, 무기력한 것입니다.
대학시절 성경을 배울 때 왜 중풍 병자가 죄인지를 깨닫기 위해 요양원에 가서 한 주간 자원봉사를 한적이있습니다. 이들을 돕
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공통적인 것을 발결했습니다. 그것은 생각이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이
고, 절망적이고, 소망이 없고, 해도 안된다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손발을 놀릴 수 없고, 몸의 거동이 불편하고, 앞으로 나아질
것이 별로 없다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포자기 합니다. 나는 일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육신이 멀쩡한데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매사에 의욕을 잃어버리고 일하기 싫어하고 무기력하게 누워 지내는 것입니
다. 나는 해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깊은 패배의식과 좌절과 절망감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수족을 마비 당한 채
누워있는 젊은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창세기1:28절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정복하
고 다스리라”는 사명을 복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환경 앞에 정복당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
는 죄입니다. 모든 중풍 환자들이 다 무기력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도, 또 인생을 살다가 큰 사고를
당하여 사지가 잘리고 몸뚱이만 남은 이들 중에도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그 삶의 자리에서 창조적이고, 개척적인 인생을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핑계대고 나는 안된다는 생각가운데 무기력한 인생을 살아가는 영적인 중풍환자들이 많습니
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보실 때 큰 죄인 것입니다.
둘째는 감사치 않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어쩔수 없이 남을 의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밥 먹고 세수하고 거동하고 옷입고, 나중에는 대소변까지 도움을 받
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
집니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로인해 그 내면에 생기는 의존심이 문제입니다. 의존심이 많은 사람은 남이 도
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이런 사람은 자기가 능히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고 남의 도움을 바랍니다.
그런데 남의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내 안에서 떠나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감사’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보배와 같은 것입니다. 감사가 내 안에 있을 때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세상
이 밝게 보이고, 살 맛이 납니다. 감격의 눈물도 있고 마음도 부드러워지고 너그러워집니다.그런데 감사가 내 안에서 사라지는
순간 내 심령은 더러운 쓰레기 창고가 됩니다. 불평, 불만, 원망 삼형제가 찾아옵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조금만 신경을 못쓰고
마음에 들게 도와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짜증을 냅니다. 오랜 동안 병치레를 하면 자주 찾아오던 가족이나 친구들도 찾아오는
빈도가 줄어듭니다. 그러면 사랑이 식어졌네, 관심이 없네, 하면서 불신하고 원망합니다. 이런 것은 마귀가 좋아합니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이 친구 하자고 찾아와서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은 병들었으나 생각과 입은 멀쩡하여 내뱉는 소리마다 신경
질적이고, 원망하고, 짜증내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육신은 멀쩡한데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든 원인을 남에게 돌리고 환경 탓, 부모탓, 팔자 탓, 하나님 탓이나 하면서
신경질 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짜증내고 혈기내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들 입에는 감사가 없고, 매사가
의존적입니다. 이런 사람이 영적인 중풍 병자인 것입니다. 로마서1:21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
고 감사치도 않는 것이 죄의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살전5:18절에는 범사
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적극적으
로 감사조건을 찾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심령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안군 지도면 면장 아들이었던 양재평은 경성제국대학 지금의 서울대학에서 법을 전공해 법조인이 되려고 서울에 올라가서
공부하던 15세에 한센 병에 결렸습니다. 양재평은 모든 희망이 좌절되는 아픔 속에 설상가상으로 26세에는 나균이 시신경을 파
괴하여 실명까지 했습니다. 좌절과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던 시절 나환자촌 애양원을 찾았을 때 교회를 시무하던 손양원목사
님의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병은 저주받은 천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임을 굳게 믿고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죄사함 받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삶에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엇
을 해야 할것인가 목표가 보였습니다. 양재평은 한센인들과 성경 암송반을 만들어 성경을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 27권을 모두 암송했습니다. 또 애양원의 한성신학교에 강의를 왔던 초등학교 친구 CCC총재 김준곤 목사님을 만나게 되
고, 한국 젊은이들을 위한 복음화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양재평은 장로가 되어 CCC를 비롯해 국내와 해외를 다니면서 자신의
간증과 손양원목사님의 순교신앙을 전파하며 젊은이 들에게 꿈과 소망을 심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고 내면의 죄문제
가 해결되면 절망적인 상황가운데서도 감사할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위대한 사명인의 인생을 살수 있게 됩니다.
2. 예수님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사죄의 권세 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사죄를 선포하시자 거기에 모여 있던 서기관들이 마음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
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죄 사함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선포하니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는 돌에 맞아 죽는 무서운 죄였습니다.(레
24:15,16)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죄를 사할 수 없다는 그들의 견해는 맞습니다.(출34:7)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바로 이 땅에 육
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서기관들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영으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곧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
람을 지으신 창조주로서 그 속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에게 질문합니다.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2:9)
사실 이 두 가지 모두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죄 사함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당장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당장 이 중풍 병자를 일어나 걷게 하심으로 이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겠다고 하십니
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그리고 중풍 병자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
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2:11)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곧 일어나 상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무기력의 상, 의존심의 상, 불평과 원망의 상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히 걸
어나갔습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죄의 역사가 눈에 보이는 일어나 걷게 되는 외적인 역사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죄의 은혜를 받고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자립적이고 능력적인 힘찬 인생을 살도록 환경도 변화를 일으킵니다. 사죄의
역사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새사람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죄 사함 받고 거듭나 새
사람이 되면 환경도 새로워 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됩니다. 늘 불평하던 사람이 범사에 감사하게 되고,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사
람이 박력있고 자립적이고 창조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하게 될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
다.(1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일어나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죄악의 자리에서 누워지내고 있습니까? 일
어나 네 상을 들고 가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걸어가는 사명인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023년9월3일-내가원하노니깨끗함을 받으라
2023년9월17일-죄인을부르러오신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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