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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김승규 / kmcksg
kmcksg@hanmail.net
929
2022-07-30 13:33:23
5
  2022년7월31일-그들의 칼은
그들의 칼은
말씀: 창세기49장:5~7
요절: 창세기49장5

인간사는 칼의 역사라고도 합니다. 칼로 남을 쳐내고 일어섰다가 또 다른 칼에 무너집니다. 그래서 옛말에 ‘칼로 흥한자는 칼
로 망한다’ 고 하였는가 봅니다. 양날의 검이란 말이 있듯이, 칼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생존에 필요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사
람을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똑 같은 칼이라도 의사가 들면 수술도구가 되어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강도가 들면
남을 위협하고 생명을 빼앗는 살인 무기가 될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칼을 잘 다루었던 두 사람 시므온과 레위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함께 엮어서 축
복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누구의 칼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칼이 되어야 하는가? 함께 묵상하며 은혜 받는 복
된 시간이 될 수 있길 축원합니다.
1.하나님이 들으셨도다.
창세기29장 33~34절은 시므온과 레위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가 나옵니다. 레아는 본 부인이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
다. 그러던 중 첫 아들을 낳게 되었을 때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보라 아들이다’ 자랑스럽게 외치며 장남의 이름을 르
우벤이라 지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이제 나를 사랑하겠지 라는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습
니다. 모든 환경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레아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레아는 응답을 받
고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아들을 낳으면서 외칩니다. “주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인하여 간절히 기도하며 부르짖었
더니 나의 기도를 마침내 들으셨도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이 들으심’ 이라는 뜻으로 시므온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
님께서 응답하셨음 감사하는 레아에게 하나님은 또 생각지 않게 셋째 아들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레아는 이제 확신이 들었
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나의 거처도 잘 오지 않고, 본부인으로서 존재감이 떨어지고 무시당했는데 이제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라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연합’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이름에 가장 민감하고 큰 의미를 담습니다. 왜냐하면 이름은 그냥 지어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서 체험되어 지는 신앙을 담아서,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축복과 기대를 담아 이름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
을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이름을 짓도록 하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셨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2:19) 그러므로 이름은 창조와 함께 그의 존재를 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입니
다.
‘시므온’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것은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제나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은총 중에 하나였습니다. ‘시므온’이라는 이름을 부르며, 또 들을 때 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
어 주시는 구나라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힘들고 여러운 일들을 당하면 그래 기도해야지 레아처럼 기도해야 되겠다. 하는 것
입니다. 시므온은 그것을 늘 깨닫게 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므온’ 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기에
늘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거듭나 새사람이 된 다음 ‘크리스천’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
다. 그리스도인 즉, 예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인이구나, 예수의 사람이구나, 이것이 우리의 존재요. 삶의 의미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폭력의 칼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함께 엮어서 축복해 줍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창49:5) 이는
창세기 34장에 나오는 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레아가 낳은 딸 디나가 히위 족속의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세겜은 디나와 결혼하길 원했습니다. 그러자 야곱의 아들들은 히위족속 모든 남자들이 할
례 받는 조건으로 디나의 결혼을 승낙을 하였습니다.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은 모든 성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할례를 행하였습
니다. 보통 할례를 행하면 고통스러워 며칠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 틈을 타서 시무온과 레위는 칼을 차고 가서 하몰과 세겜
을 죽이고, 성의 모든 남자를 죽이고, 누이 디나를 집으로 데려오고, 그리고 성읍의 모든 재물들을 다 노략질 하였습니다. 여동
생이 강간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결혼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수치가 된다고 이렇게 보복을 한 것은 너무한 것입니다. 이는 보
복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답지 않은 중대한 범죄입니다. 이것 때문에 시므온과 레위는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이들의 칼은 가족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칼이 아니라 보복하는 칼이었습니다. 폭력의 칼이었습니다. 강도의 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달랄트와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
는 말합니다. 나는 아무런 재능도 없는데요. 그런 이들에게 좋은 달란트 하나를 소개합니다. 그것은 눈물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로 유명합니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 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애2:11) 당시 멸망의 길로 접어드는 조국 유다를
향하여 흘린 눈물입니다.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고, 정치인들은 힘없는 백성들의 토지를 불법으로 약탈하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미래의 일을 예언했지만 그들의 예언은 거짓 예언이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계시도
영감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성의 부패는 극에 달하여 성중에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그중에 하나님의 성
전을 찾아 예배하는 진정한 예배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이렇게 범죄하여 타락한 백성들을 보시며 울고 또
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교도소로 보내는 아버지의 울음이었고, 자식의 종아리를 때리는 부모의 마음처럼 혀를 깨무는
소리 없는 통곡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심판의 칼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니”(겔21:3) 그런데 하나님은 눈물로 간구하는 예레미야를 보고 더 이상 칼을 내려치지 못하
고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 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
라”(렘5:1) 이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딸 시온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 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애2:19)
이렇게 살길을 제시하며 함께 눈물로 기도하자고 외쳤지만 끝내 백성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 예루살렘은 망할 수밖에 없었습
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혼탁하고 흑암이 가득한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눈물
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어짐으로 흘리는 눈물도 있고, 서러워 흘리는 눈물도 있고, 아파서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값진 눈물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흘리는 눈물입니다. 흔한 눈물도 어떻게 쓰임 받느냐? 가 중요합니다. 나
의 눈물 한 방울이 이 시대를 살리고,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멈추게 하는 생명의 눈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방울 눈물의 기적
을 이루어 내는 우리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3.신앙의 좋은 친구가 있습니까?
야곱은 계속하여 이렇게 축복합니다.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그들을” 이라고 시므
온과 레위는 이렇게 묶어서 말합니다. 이는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친구도 잘 사귀어야 합니다. 시므온
과 레위, 두 사람중 한 사람이 형제를 만류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좋은 신앙 생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비밀 중의
하나는 내 주변에 얼마나 경건한 신앙인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 신앙이 연약할 때 나를 돌봐주고, 나
를 격려해 줄 수 있는 신앙의 사람들이 내 주의에 있어야 합니다. 크리스찬의 교제는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의 질을 결정합니
다. 서양속담에 “여러분의 친구를 나에게 보여 주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가를 나도 여러분에게 말할 수가 있을 것
이요” 라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는 내 인격의 거울입니다. 내 주변에 신앙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모임은 서로가 닮으면서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게 됩니다. 바면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생리에 젖어 있는 사람들
과 함께 자리를 하기 시작하면 자연히 내 삶의 형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신앙 인 답지 않은 악한 일에 담합하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증오의 씨를 뿌린 사람들
은 그 삶에 대한 대가를 하나님은 그 자손들을 통해서 받아 내십니다. 민수기 1:23절에 보면 시므온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오만구천삼백명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흘러가면서 민수기26장 14절에 보면 시므온 지파의 인구는 이만이천이백명
밖에 안됩니다.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후에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 신명기33장에서 12지파를 축복하는데 시므온 지파
는 빠지게 됩니다. 시므온은 이렇게 점점 쇄약해 졌고 잊혀진 지파가 되었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최대의 형벌이 있다면 그것은 잊혀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7장에 이런 비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
떤 사람들이 마지막 날 예수님 앞에 나와서 말합니다. “주님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
신을 쫒아내기도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도 행했습니다.” 이들에게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
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7:23)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이 선언이 인간에게 가
장 최대의 비극인 것입니다. 디나의 사건이 비록 가슴 아픈 이유에서 출발했지만 신앙 인 답지 않은 방법으로 복수, 살인, 미음
등 잘못된 감정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때 이 지파는 잊혀진 지파가 되었습니다. 신앙인이 신앙인답지 않은 삶을 살
면 안 됩니다. 비 신앙적인 방법과 비 성경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살면 안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7:24)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12지파가운데 하필이면 이러한 지파가 섞여 있을 까요? 그것은 오고 오는 시대에 하나님의 백
성들 가운데도 이들처럼 살아갈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작이 중요한 것처럼 끝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시므온’으로 출발했지만 하나님께 잊혀진 지파가 되어가는 불행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눈물의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눈물로 부르짖는 사람이 되어 진정한 ‘시므온’의 축복을 받는 우리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
니다.

2022년7월24일-물의 끓음 같았은 즉
2022년8월7일 -여호와께헌신하는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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