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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김승규 / kmcksg
kmcksg@hanmail.net
923
2022-06-18 13: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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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6월19일-이렇게 축복하라
이렇게 축복하라
말씀:민수기6:22~27 요절:민수기6:27
1993년 노벨연구소에서는 역사상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세르반데스의 <돈키호테>를 선정했습니다. 2002년 세계의 유명 작가
100명이 선택한 세계 최고의 작품도 역시 돈키호테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라성 같은 세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
예프스키 같은 이들이 쓴 많은 작품들을 제치고 어떻게 돈키호테가 최고의 작품으로 뽑혔을까요?
스페인의 시골 향사 알론소 키하노는 밤낮없이 중세의 기사 소설을 읽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 머리에 나사가 하나 풀린
듯 자신이 나라를 위해 봉사를 해야 하고, 명예를 세워야 한다며 방랑기사의 길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는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돈키호테라고 짓고 사라진 전설의 기사들을 모델로 해서 기사도를 복원하고자 결심합니다. 그는 젊은 여자들과
미망인들을 보호하고 불쌍하고 가난한 어린 고아들을 구제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깁니다. 방랑기사로 나선 돈키호테는 바람에
돌아가는 풍차를 거인으로 알고 돌진하는가 하면, 시골 이발사의 세숫대야를 전설적인 맘브리노의 투구로 오인하기도 합니다.
또한 여관을 성으로 착각하고, 여관 주인에게 기사 작위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안일을 생각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며, 불의라고 여겨질 때는 주저하지 않고 정의의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그 시
대의 진정한 기사였습니다.
이 작품에는 우리가 잊고 살았지만 회복해야 하는 순수한 인간의 참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거슬러 어이없거나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우리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미쳤다고 말합니다. 돈키호테가 마지
막에 돌아와 제정신이 들고 임종한 후 그의 묘지에는 이런 묘비명이 새겨졌습니다. “광인으로 살다가 제정신으로 죽은 사람”
돈키호테는 미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세상이 미친 것일까요?
“주인님, 주인님, 저건 풍차에요 풍차” “내 말에 토를 달지 말아라 이놈아. 저건 포악한 거인 군대가 틀림없느니라. 무서워 싸
움에 나서지 못하겠다면 여기서 기도나 하면서 기다려라” 황당한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종자를 뒤에 두고 돈키호테는 풍
차를 향하여 빠르게 달려 가며 천지가 울리도록 고함을 칩니다. “자 악당들아 어서 싸울 태세를 갖추어라. 내 비록 혈혈단신이
지만 나에게는 천 명과도 맞붙어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있다”
성경에 보면 돈키호테처럼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으나 진정 하나님의 기사였던 많은 신앙의 영웅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어쩌면 다윗도 돈키호테 같은 미친 광인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돈키호테 같
은 순수성과 무모한 듯한 도전정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 기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이 탄 늙
은 말을 최고의 명마로 믿으며 허름한 연장을 최고의 무기로 여기고, 돌아가는 풍차를 보고도 용감하게 달려가는 믿음의 사람
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에 매여 주님을 경배하는 순수한 열정
의 예배 자가 필요합니다. 기사도를 회복하고 진정한 기사들을 세워 나가길 소망했던 돈키호테처럼 우리는 이 시대 하나님의
기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에 미친 사람들,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오늘은 제사장의 축복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야곱은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에게 축복기도해 줍니다. 그리고 죽기 전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줍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야곱의 파란만장한 생애 중에 그가 죽기 전 각 아들들에게 축복기도해
준 것과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경배한 것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제사장의 축복기도는 중요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복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복
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누가 복을 주는가?
한국인은 복에 대해 특별히 유별납니다. 기둥에도, 베개에도, 밥 먹는 숟가락에도 복자를 새깁니다. 부모들은 다리를 떨어도,
밥알을 흘려도, 문지방을 밟아도 복이 나간다고 자녀들에게 주의를 줍니다. 복이라는 말은 매력적이면서도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깍쟁이 같습니다. 복은 잡은 줄 알면 달아나고 포기하려면 앞에 와서 알짱거리는 잠자리 같습니다. 그렇기에 복은 잡는
사람에게는 보물단지이지만 놓친 사람에게는 평생 짝사랑만 하다 끝난 애물단지가 됩니다. 한국인들이 복을 간절히 구하면서
도 “복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을 구함에 있어 그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하
나님이 아닌 비인격적인 대상들에게서 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민6:24) 여호와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천
지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의 손에 길흉화복이 모두 있습니다. 그분은 복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이스라
엘 백성은 복의 샘에 파이프를 대기에 복민(福民) 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복의 통로도 알았습니다. 누구를 통해 복이 선언되
는가? 유대 백성에게 내리는 축복은 제사장 자신의 권위에 기초하지 않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제사장은 축복을 선언할 때마다 “여호와는” 이라는 말을 전제한 후 각종 축복을 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의 축복
권은 하나님이 위임하신 특별한 권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 권위로 말미암아 그 축복의 내용이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후일에 유대 랍비들은 이런 경고를 들려주었습니다. “당신은 행여 ‘이 초라한 제사장이 나에게 무슨 축복을 베풀 수
있겠는가?’ 라는 말을 하지 말라. 왜냐면 당신에게 복을 주시는 자는 그 제사장이 아니라, 그 제사장을 통해 말씀하시는 거룩하
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자신이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에
게 제사장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통로였습니다. 그만큼 존경하고 신뢰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을 세워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복은 무엇이었습니까?
2.보호해 주시는 복
이스라엘은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두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축복은 장수하고 부자가 되고 땅을 많이 차지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그런 축복을 전해야 백성들이 좋아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물질의 복 이전에 “하나님의 보호의 복”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적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지지 기반이 없는 땅에서 원주민들과 싸워 생존해야 합니다.
복을 받아도 지켜 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호해주시는 복이 가장 중요했던 것입니다. 시편127편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
님께서 지켜주시는 임마누엘의 복이 가장 우선되어야할 첫 번째 복인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
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도 성격적인 복관을 가져야 됩니다. 최고의 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라는 ‘임마
누엘의 복’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졌다 해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지 않으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3.은혜의 삶에 대한 복
제사장들이 기원하고 백성들이 간절히 구할 제 2의 복은 은혜를 누리는 복입니다.
은혜는 내 행동에 따른 것이 아닌 일방적인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모든 것을 좋은 마음으로 좋게 해석하며 삽니
다. 항상 눈동자에 사랑의 렌즈가 끼어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사랑스럽게 보이고, 그들에게 내가 사랑을 받는다 생각하니 행
복하고 기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고 감동이 되고, 감사가 넘칩니다. 이런 은혜 안에 머물러 사는
자가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서신 말미에는 항상 “너희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지어다”(고후
13;13) 하였습니다.
신앙은 은혜 생활입니다. 은혜가 떠나면 억지가 되고, 그처럼 힘든 일이 없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아도 은혜가 없으면 비판자
가 되기 쉽습니다. 아는 것만큼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짐이 됩니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은혜가 있고 없고에 따라 와 닿는 것
이 다릅니다. 젖소는 물을 마신 후에 그 물로 아름다운 젖을 만들어 내고 뱀은 물을 마신 후에 그 물로 독을 만들어 냅니다. 은
혜가 없으면 신앙생활이 엉망이 됩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기독교인이 바리새인이 됩니다.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은혜가 떨
어진 것이 문제입니다. 은혜 충만한 복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평안과 평화의 복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은 예루살렘입니다. 이는 ‘살렘의 도시’ 즉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평강은 마음의 평화요, 행복
의 지수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은혜를 주시니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수 있다는 자부심에서 마음이 평안한 것입니다. 그
래서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이렇게 축복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유대인
에게 최고의 평강은 ‘하나님의 얼굴을 내게로 향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향하여 드사’라는 말은 ‘열정적으로 바라보시
다’ ‘계속하여 주시하시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강은 안전 행
복 건강 번창 평안 기쁨 등이 담겨있습니다. 그렇기에 평강은 모든 기쁨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축복의 결정체
입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선포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평화의 실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죄와 사망을 멸하셨습니다. 그
리고 그를 영접하는 이들에게 참 평강을 맛보게 하셨습니다.(골1:20)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 하나님의 돌보심으
로 어떤 위험과 도전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며, 아울러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
라 세상을 보기에 평안의 복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살면서 분통이 터지고,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가 많습니다. 참 평안을 얻는
방법은 그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쏟아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할 때 우리에게 참
된 평강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신분은 세상을 향하여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달라진 신분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축복의 언어
를 구하사고 축복을 선포해야 합니다. 구약의 축도는 아론과 그의 제사장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흘러갔지만, 신약에서는 영원
한 왕이시오 선지자시요 대 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들에게 흘러갑니다. 우리는 그 복의 수혜자로 그 복을
세상에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와 평강의 복이 우리 성도들에게 넘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2년6월12일 -반드시 돌아 오리라
2022년6월26일-교회됨을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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