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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김승규 / kmcksg
kmcksg@hanmail.net
921
2022-06-05 10:20:28
17
  2022년6월5일 집나간유다가 돌아오다
집나간 유다가 돌아오다
말씀:창세기38:1~11 요절:창세기38:2
어릴 때 저는 서해안 바닷가에 살아서 생선이 친숙하고 지금도 생선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생선이 있었는
데 그것은 전어라는 것입니다. 전어는 가시가 많고 비린내도 많이 납니다. 그래서 인기가 없고 생선 축에도 끼지 못하고, 돈도
별로 되지 않는 값싼 생선입니다. 그런데 이 전어가 어느 때 부터인가 인기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이런 말이 나돌기
시작한 때부터입니다. “전어를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 온다” 누가 언제부터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이 말이 돌고부터 전
어는 굴비 부럽지 않은 생선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어는 생으로 회를 해서 먹으면 그나마 맛이 있는데, 전어를 구우면 가시가 다 드러나서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기름
기가 많아서 자칫 잘못 구우면 금방 타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별 볼일 없는 전어에 사람이야기를 만들어 스토리를 입힌 것입니
다. 왜 며느리가 집을 나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집살이가 너무 고달파서, 아니면 부부간에 사이가 안 좋아서, 아니면 바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집을 나갔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전어를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 올만큼 정말 전어가 맛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이 말처럼 며느리가 집을 나갔는데 전어를 구우니까 며느리가 돌
아왔다는 경험을 실제로 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어에 스토리를 입히니까 전어 스토리텔링이 된 것입니
다. 그러자 정말 전어가 맛이 있나 보다 하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가을 전어 철이 되면 오이도, 소래포구, 대부도 선
착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꼭 한번쯤은 구운 전어를 사먹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라고 합니다.
저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전어에 돌아온 며느리 간증을 입히니까 전어가 유명해지고 잘 팔리는데 하물며 예수님에게 우리의
간증을 입히면 어떻게 될까? 우리 광명교회에 우리의 스토리를 입히면 어떻게 될까? 스토리텔링 복음 마케팅은 사실 초대교회
때 베드로, 바울사도를 비롯한 사도들과 성도들이 많이 하던 전도 방법입니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습니다. 나의 삶은
변화되었고,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 만나 변화된 수많은 간증스토리들을 듣
고, 방황하는 많은 이들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나는 행복해요
집나간 며느리는 “전어” 때문에 돌아 왔는데 집나간 유다는 왜 돌아 왔을까요? 성경에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꽤 유명합니다. 집을 나갔던 탕자는 왜 돌아 왔나요? 집나간 며느리에게 전어는 다시 돌아올 빌미를 제공했다면, 유다에게 전
어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집나갔다가 돌아온 유다이야기를 통해 함께 은혜 받는 복된 시간이 될수 있기를 축원
합니다.
1. 집나간 유다
오늘 본문은 유다의 가출로 시작됩니다.“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
라”(1) 유다가 집을 나갑니다. 그 후에 라고 말하므로 가출의 이유를 암시하여 줍니다. 어떤 사건이 있은 후 그것이 계기가 되
어 유다가 집을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37장의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37장의 사건은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 상인
에게 팔아넘긴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왜 유다가 가출했을까요? 유다를 비롯한 형제들은 채색 옷을 입고 아버지의 특별한 사
랑을 받는 요셉을 시기했습니다. 또 꿈 자랑 까지 하는 요셉이 더 얄미웠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죽이자고 하였습니다. 이때 맏
형이었던 르우벤은 살인하는 것은 막기 위해서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요셉을 건져내어 집으로 함
께 가고자 했습니다. 요셉은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 졌습니다. 그때 유다가 나서서 요셉을 죽이는 것보다 애굽의 상인에게 팔자
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유다의 의견에 형제들이 동의하고 결국 요셉은 은 20에 애굽으로 가는 상인에게 노예로 팔려 가게 됩
니다.
그런 후 저들은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서 요셉이 입었던 채색 옷에 짐승을 잡아 피를 묻힌 후 들짐승이 요셉을 헤친 것처럼 가
장하여 아버지 야곱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가 이것을 발견 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
서”(37:32) 야곱은 그 옷이 요셉의 옷인 것을 확인하고 요셉이 짐승들에게 잡아먹힌 줄 알고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애통하며 울었습니다. 아무리 아들들이 위로해도 슬픔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의 상심과 고통은 너무나 컸습니
다.
이 사건 후에 유다는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어쩌면 형제들이 죄를 모의해 놓고 모든 책임을 유다에게 떠 넘겼는지 모릅니다.
왜냐면 요셉을 죽이는 것보다 생명을 살리려는 의도로 팔자고 제안했으나 결국 요셉을 노예로 파는데 앞장섰던 사람은 유다가
되고 만 것입니다. 형제들이 죄를 떠넘기고, 또 아버지 야곱은 저렇게 날마다 슬피 울고 있으니 유다의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입니다. 이 죄의식은 모든 원인을 아버지께 화살을 돌리게 됩니다. 아버지가 요셉을 편애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떠 넘겨
봅니다. 만일 요셉이 아니라, 다른 아들들이 없어졌어도 아버지가 저렇게 슬피울까 생각하니 더욱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결국 유다는 슬피우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또 발뺌하는 형제들이 미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형제
들에게 크게 시험이 든 유다는 가출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당시 야곱의 가정은 교회와 같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가문은 가난안 땅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가
문이요,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신앙을 전수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큰 민족으로 형성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공동체를 떠난다는 것은 단순한 가출이 아니라, 성도가 시험이 들어 교회를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2. 너는 나보다 옳도다
집을 나간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하여 자기들끼리 좋아서 동거에 들어갔습니다.(2) 세 아
들을 낳았고, 그 아들들이 성장해서 큰아들 엘이 다말이라는 여인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런데 엘이 죽고 다말은 청상과부가 됩
니다. 젊은 엘이 죽은 것은 하나님께서 장자 엘이 여호와보시기에 악하여서 그를 죽이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했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신앙을 다 까먹고, 아들들에게도 전혀 신앙을 물려주지 않고
불신자 가정이 되어 살았던 것입니다. 이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당시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계대결혼법이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유다는 다말을 둘째 오난과 결
혼시켯습니다. 그런데 첫날밤 오난도 죽었습니다. 유다는 두려웠습니다. 이러다가 셋째 셀라마져 죽을 것 같아서 며느리 다말
을 친정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두 아들을 잃은 충격 때문인지는 모르나 유다의 아내마저 세상을 뜨게 됩니다.
여섯 식구가 행복했던 집안에 딸랑 유다와 막내아들 셀라만 남게 되었습니다. 손주 볼 나이에 아들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집안
일까지 해야 하는 유다의 한숨 소리가 천둥처럼 집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괴로운 마음을 달래고자 세상 친구 히라와 함께 이웃동네로 양털을 깎으러 갔습니다. 시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왔다
는 소식이 며느리 다말의 귀에 들어왔습니다. 다말은 창기 복장을 하고 얼굴을 가리고 정체를 숨긴 뒤, 길목에서 유다를 기다라
고 있다가 만나 그를 유혹하여 방으로 끌어 들였습니다. 유다는 화대가 없어서 자기의 도장과 지팡이와 허리끈을 담보 잡히고
며느리 인줄도 모르고 하룻밤을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문이 유다의 귀에 들려 왔습니다. 유다는
너무 화가 나서 동네 청년들에게 다말을 끌어다가 불에 태워 죽이라고 했습니다. 끌려가면서 다말은 이렇게 외칩니다. “청하건
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까, 내가 이 물건의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창38:25)
유다는 그 증거물이 자신의 것인 줄 알고 털 석 주저 않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이 말 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져 있었습니다. 요셉을 팔던 때부터 집을 나오며 살아왔던 지난 세월의 거짓된 삶이 어쩌면 유다의 마음을 회오리바람처
럼 휘 젖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유다는 결국 베레스와 세라라는 쌍둥이 아들을 얻게 됩니다. 이 사건이후 유다는 집으로 돌아오
게 됩니다. 왜 일까요? 집을 나갔으면 출세하여 돌아와야 하는데, 유다는 세상 말로 쫄딱 망한 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며느리
인지, 아내인지 헷갈리는 다말과 또 이상하게 태어난 쌍둥이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땅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쉬운 일
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다는 모든 부끄러움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이유가 뭘까요? 유다를 집으로 돌아
오게 한 “전어”는 무엇이었을까요?
3. 그 아이를 대신하여
앞서 요셉을 공부할 때 베냐민이 총리의 은잔을 훔쳤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잡히게 되었을 때 유다가 나서서 요셉에게 변호
하는 말이 창세기44:14~34장의 내용입니다. 이는 가장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최고의 웅변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요셉은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고 형들을 다 용서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은 “아버지”라는 단어입니다. 유다는 베
냐민의 친 형 요셉을 잃고 슬퍼했던 아버지, 그리고 이번에 베냐민마져 잃게 되면 아버지는 너무 슬픔에 빠져 죽게 될지 모른다
고 합니다. 아버지의 슬픔을 자식으로서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으로 잡히겠다고 합니
다. 자신의 목숨으로 베냐민을 무사히 데리고 오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전에 유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베냐민에게 채색 옷을 입혀 줄 때 단순히 편애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엄마 없는 빈자리를 채색 옷으로 라도 채워 주려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요셉을 잃고 오열하던 아
버지를 이해 못했는데, 두 아들을 잃고 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요셉을 잃은 것처럼 집을 뛰쳐 나온 자신을
동일하게 사랑하고 기다리고 계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집나간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듯
유다는 품꾼의 하나로라도 자신을 써달라고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아버지의 마음
을 이해하는 아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유다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누가복음15장에서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설명할 때 아
마 유다를 생각하며 말했는지 모릅니다. 유다는 비록 넷째 아들이었지만 영적인 장자가 되어 메시야를 잉태하는 지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집나간 유다가 돌아오게 된 전어는 “아버지의 마음” 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의 증표요, 두 팔 벌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
님은 우리를 두 팔 벌려 기다리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품입니다. 돌아오는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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