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라
말씀:사무엘상1:1~3
요절:사무엘상1:3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이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더라”
2025년 대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은 새해 어떤 계획들을 세우고 소망하고 있나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 비
교적 고민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삶의 나침반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
입니다. 다윗왕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됩니다.(시119:105) 올 한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고, 그 말씀을 먹으며 매 순간 순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를 받고, 영적으로 건강하고, 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복
된 한 해가 될 것을 믿습니다.
올 해는 매 주일 사무엘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날로서 왜 사무엘서인가? 를 소개하면
서 만군의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삶 깊은 곳에 좌정하시고 주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왜 사무엘서인가?(시대의 전환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다)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전환되는 100년 간의(B.C1100~1000) 과도기를 다루고 있습니
다. ‘과도기’, ‘전환의 시대’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이 시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내포
합니다. 개인이나 공동체, 민족이나 국가가 과도기를 잘 대처하면 찬란한 진보를 이룰 수 있고, 아니면 비참한 후퇴를 경험하기
도 합니다.
소년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던 그 시대를 성경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3:1)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주시기 시작하셨고 이스라엘은 과도를 잘 극복하여 찬란한 다윗 왕국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100여년 전 근대사회로 전환하는 역사의 과도기를 맞이했습니다. 36년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이어서 6.25로 동족
상잔의 비극을 겪고 분단의 아품을 겪었습니다. 이 역사의 전환기를 우리 민족은 참으로 슬기롭게 대처하고 극복하여 찬란한
현대 대한민국 사회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역사의 원동력은 바로 하나님의 돌보심과 역사하심이었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둠가운데 있는
우리 민족에게 환한 등불이 되었고, 구원의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금 우리 사회는 현대사회에서 초 현대사회로 진입하면서 또 한번의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나뉘어 지면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시대로,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인공지능 시대로 전환되고 있습
니다. 이런 시대에서 가치관이 혼동되고, 사회적 무질서와 세대간의 갈등, 그리고 가정의 붕괴와 창조질서의 파괴가 심각한 사
회 문화적 현상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정치는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고, 이에 교회마져 중심을 잃고 그 영향력을 상실해 가고
있으며, 경제적 상황은 침체되고 있습니다. 이런 다급한 문제들의 해결책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분야의 석학들과 전문가들을
통해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하
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시대를 이끌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서의 메시지는 현대의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어야 합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사
무엘서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 전환기의 시대를 극복해 나가고자 합니다.
사무엘서라는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합니다. 엘리, 한나, 사무엘, 사울, 다윗, 요나단, 압살롭, 시므이등 다양
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의 삶에 얽힌 희로애락, 야망과 좌절, 우정과 배신, 범죄와 회복, 사랑과 미움, 성공과
실패, 권력과 다툼, 이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 삶에 그대로 나타나는데 이런 문제들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오묘하신 섭
리로 풀어 나가시며 아름다운 창조를 해 나가십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하여 단조롭기 쉬운 인간의 이해가 깊어지고 폭이 넓
어지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멋지게 가꿀수 있습니다. 사무엘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 삶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지혜를 찾는 복된 은혜가 임하길 축원합니다.
2. 사무엘서의 주제(하나님의 존중히 여기는 삶의 축복)
개인이나 공동체가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만고불변의 하나님의 역사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
니다. 그래서 사무엘서2:30절은 사무엘서의 전체 요절이라 할수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본래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만민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뽑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19:5~6) 그러나 사사 시대 말기에 접어들면서 이스라엘
은 말씀을 저버리고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되는 대로 살았습니다. 삶의 절대 기준을 상실한 채 마음대로 살아가는 당
시 시대를 사사기 제일 마지막장 마지막 구절에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사무엘서에 흐르는 주제는 하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방가운데서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위해 택함 받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우리 신약의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신
약의 성도들의 신분과 사명에 대하여 이렇게 감격적으로 말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
라요 그의 소유가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
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
은 자니라”(벧전2:9~1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 백성으로 삼으시고 친히 다스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열방과 같이 눈에 보이
는 왕을 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8:7) 이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왕을 세우셨습니다. 이 왕은 하나님의 기업
의 지도자로서(삼상10:1)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을 좇아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 사명이 있
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세움 받은 사울왕은 백성들이 모두 원하고 여론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인간적으로 훌륭한 인물이었으나 하나님
앞에는 교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싫어 했고 자기 이름을 내기를 좋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악령에 시달리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반면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고 하나님 앞에 겸비했습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존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높이시고 그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를 허락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삼하7:16.행13:22,23)
우리는 이 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을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을 멸시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선택이 있습니다. 하
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욕망과 세상의 흐름을 좇아갈 것인가? 하나님께서 기뻐
하시는 삶을 선택할 때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매 순간 순간 복 받는 삶의 길을 선택하여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기
름지고 풍성하고 건강하게 가꾸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무엘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다스림
을 받는 복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정
3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사무엘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사무엘
서1:3절에서 처음 사용하고 열한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하므로서 ‘사무엘서의 하나님’ 이라는 칭호로 불립니다. 만군이란 첫째,
하늘의 별들. 둘째,영계에 속한 천사와 영들의 군대. 셋째, 땅의 이스라엘군대를 가리키는 히브리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집행할 우주의 모든 세력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주재로서 하늘의 천군천사를 거느리며 높
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초월자이십니다. 동시에 땅에 머물면서 이스라엘 군대도 지휘하시며 하나님이 세우신 뜻을 이루어가시
는 만왕의 왕,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따라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 만물에 대하여 창조주가 피조물에 대하여 당연히 갖
는 주권으로 섭리하시되 창조, 보존, 인도,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역사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사용하십니까? 급류에 힙쓸려 떠내려 가는 자식을 뛰어 들어가 건져내는 아버지같이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자녀 이스라엘을 위한 구출 작전을 펴시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되 ‘남은 자(remnant)’를
통해 일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서 시작은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무명의 사람으로부터 시작합
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하나님을 떠난 것 같은 시대였으나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사6:13) 지극히 어리고 연약한 믿음이지만 하나님을 진실되게 경외하는 사람이 남이 있었습니다. 바로 엘가나입
니다. 엘가나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
를 드렸는데”(3) 한마디로 엘가나는 예배자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
하는 지를 찾으십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내 영혼 거룩한 은혜를 향하여! 내
마음 완전한 하나님 향하여! 이곳에서 바로 이시간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025년 새해 출발을 다짐할 때 무엇보다 엘가나 가정처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가정이 되
고자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시 시대는 꺼져 가는 심지와 같은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것이 비정상적이고
이상하게 생각되는 가치관이 삐뚫어지고 패역한 시대였습니다. 이런 어두운 시대에 엘가나는 그 시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살며 믿음의 등불을 지켰습니다. 그의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정이었
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존중하고 온 마음을 다해 예배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광명교회 성도님들이 2025년 예배자로 설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이시대 남은 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